풍설도하 18화 — 「황성의 이름」

풍설도하 18화 – 황성의 이름 | 정통 무협 웹소설 연재

풍설도하 18화 — 「황성의 이름」


바람이 먼저였다.

벽이 열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지하 돌 통로의 눅눅한 냄새가 걷히고, 흙과 소나무 냄새가 들어왔다. 출구는 기록소 뒤편 산자락, 바위 사이에 난 틈이었다. 서 있는 것조차 겨우인 비탈이었다.

네 사람이 차례로 나왔다.

청오, 묵연주, 유 씨, 서이강.

서이강이 마지막으로 나오며 벽 틈을 당겨 닫았다. 안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하정회 나머지 인원이 통로에 들어선 것이었다. 벽이 닫히는 순간, 소리가 잘렸다.

“얼마나 버티오?” 서이강이 청오에게 물었다.

“이 출구를 아는 사람이 적다. 하지만 안 다는 뜻은 아니다.” 청오가 비탈 위쪽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한 식경.”

“충분하오.” 서이강이 말했다. “뛰겠소.”


****

비탈을 오르는 데 반 식경이 걸렸다.

경사가 급했다. 눈이 녹아 흙이 질척거렸다. 청오는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오십대의 몸이었지만, 칠 년을 숨어 살던 사람의 체력이었다. 묵연주는 소리 없이 올랐다. 유 씨는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서이강이 맨 뒤에서 뒤를 확인하며 올랐다.

기척이 없었다.

능선 위에 오르자, 변경 성이 멀리 내려다보였다. 상서루가 어느 쪽인지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묵연주가 잠시 그쪽을 보았다가, 눈을 돌렸다.

“왕지훈은 아직 버티고 있겠죠.”

“버티고 있을 것이다.” 청오가 말했다. “그 사람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게 강점이면서, 이십 년 전에는 약점이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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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넘어 소나무 숲 안으로 들어갔다.

유 씨가 걸음을 늦추며 허리춤에서 작은 통을 꺼냈다. 안에서 얇은 죽간 쪽지를 꺼내 붓 끝으로 짧게 썼다. 대여섯 글자였다.

죽간 쪽지를 다시 통에 넣고, 통 한쪽을 엄지로 누르자 뚜껑이 열리며 작은 구멍이 드러났다. 그 안에 얇은 끈이 들어 있었다. 유 씨가 끈을 당기자 작은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전서구(傳書鳩)요?” 서이강이 물었다.

“기구(機鳩)입니다.” 유 씨가 말했다. “새가 아니라 기관 장치입니다. 청조 기록소에서 본부까지, 이 통이 지정된 경로로 전달됩니다.”

“어떻게요?”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 유 씨가 통을 소나무 가지 위에 고정시키며 말했다. “청조의 전언 방식은 청조만 압니다.”

서이강은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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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안쪽,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 아래에 네 사람이 앉았다.

처음으로 청오가 합류한 채 쉬는 자리였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거리가 있었다. 익숙해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묵연주가 먼저 청오에게 물었다.

“하정회라는 이름, 스승님께서 쓰신 기록에는 없었어요.”

“없을 것이다.” 청오가 말했다. “그 이름이 강호에 드러난 건 십 년 전도 안 됐다. 이십 년 전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이름이 없으면 뭐라 불렀죠?”

“그냥 위쪽이라고 했다.” 청오의 입가가 굳었다. “황성 안쪽에 있는 사람들. 관복을 입고 조정에 앉아 있지만, 다른 장부를 따로 쓰는 자들이다.”

서이강이 소나무 가지 끝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성에 뿌리를 둔 조직이 강호 세력까지 관리한다는 거오?”

“관리가 아니라 이용이다.” 청오가 고쳤다. “일명회도, 예전에는 그들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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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유 씨가 그 말을 짚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뜻입니까.”

“일명회가 커졌다.” 청오가 말했다. “쓰다 보면 도구가 손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지금 일명회는 하정회와 협력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이번에 기록소로 온 자들은 하정회 쪽이었다. 일명회는 아직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묵연주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두 세력 사이에 끼어 있는 거네요.”

“세 세력이다.” 청오가 말했다. “청조도 한 축이다. 유 씨도 알고 있겠지만.”

유 씨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이강이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청조는 이 기록으로 무엇을 하려 하오?”

유 씨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보관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드러냅니다.”

“때가 언제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위에서 정합니다.”

서이강의 눈빛이 짧게 움직였다.

“위에서.” 그가 반복했다. “그 위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짐을 맡기라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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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씨가 서이강을 보았다.

“맡기라는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같이 움직이자는 거죠. 이 기록은 한 사람이 들고 있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곳에서 동시에 원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청조의 구조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오.”

“선택입니다.”

서이강은 잠시 말이 없었다.

표사는 표국에 소속된다. 표국이 있어야 보호받고, 보호받아야 짐을 옮길 수 있다. 혼자 다니는 표사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표국을 고를 권리가 표사에게 있다.

“묵연주가 결정하면 따르겠소.”

그가 그렇게 말했다. 묵연주를 보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옆에서 그녀가 잠깐 굳는 것을 느꼈다.


****

묵연주가 청오에게 물었다.

“스승님이 마지막에 청오에게 한 말이 있다고 했죠.”

청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수 있어요?”

청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소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갔다. 가지 끝의 눈이 조금 흩어졌다.

“기록은 도구가 아니다.” 청오가 말했다. “그것이 첫 번째였다. 기록을 무기로 쓰면, 결국 기록도 무기가 되어 부러진다.”

묵연주가 입술을 눌렀다.

“두 번째는요.”

“제자가 올 것이다. 그 아이가 기록을 가져오면, 그때는 숨지 말고 함께 움직여라.” 청오가 눈을 떴다. “그것이 두 번째였다.”

묵연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이강은 그녀의 옆을 지켰다. 말을 걸지 않았다. 지금은 그 공간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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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 묵연주가 입을 열었다.

“청조와 함께 움직이겠어요.”

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묵연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이 기록은 청조의 것이 아니에요. 운령문의 것도 아니고, 왕지훈의 것도 아니에요.” 묵연주가 죽간을 품에서 꺼내 손 위에 올렸다. “이 기록이 드러나야 할 때와 방식은, 청조 위쪽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정해야 해요.”

유 씨가 잠시 말이 없었다.

“어렵습니다.”

“어렵다는 걸 알아요.” 묵연주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기록은 또 다른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거예요. 스승님이 가장 원하지 않으셨던 것.”


****

청오가 먼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유 씨가 청오를 보았다.

“청조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 청오가 말했다. “내가 칠 년 동안 숨어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청조도 이 기록을 정치적으로 쓰려 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유 씨가 한동안 바닥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본부에 전언을 다시 보내겠습니다. 조건을 포함해서.” 그가 말했다. “답이 오기 전까지는, 제 판단으로 움직입니다.”

서이강이 말했다.

“그거면 됐소.”


****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설 때, 청오가 서이강에게 다가왔다.

둘만 반 보쯤 떨어진 자리에서, 청오가 낮게 말했다.

“하정회의 배후에 이름이 하나 있다.”

서이강이 그를 보았다.

“이십 년 전부터 이 기록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온 사람이다.” 청오가 말했다. “황성 안에서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이름이 뭐요.”

청오가 잠시 주변을 확인했다. 묵연주와 유 씨는 두 걸음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 모두 앞에서 말하겠다.” 청오가 말했다. “지금은 아직 이르다.”

“왜요.”

“그 이름을 알게 되면, 누군가는 당장 움직이려 할 테니까.” 청오의 눈빛이 묵연주를 잠시 스쳤다. “때가 있다. 지금은 먼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서이강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표사는 짐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절대 짐을 열지 않는다. 청오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디로 가오?”

“청조 본부 바깥, 내가 아는 곳이 있다.” 청오가 말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은 아니지만, 아무나 찾아오지는 않는 곳이다.”

“그걸 믿어야 하오?”

청오가 짧게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굳어 있던 얼굴의 한 귀퉁이가 조금 풀리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아직은 믿지 않아도 된다. 따라오면 된다.”

서이강이 도를 허리에 걸었다.

“표사의 오래된 원칙이오.” 그가 말했다. “믿기 전에 먼저 같이 걸어본다.”

네 사람이 숲을 빠져나왔다.

길은 북쪽이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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