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도하 15

풍설도하 15화 – 죽간 속의 이름 | 정통 무협 웹소설 연재

풍설도하 15화 — 「죽간 속의 이름」


변경 성 북문을 벗어난 길은 곧바로 어두워졌다.

성벽 안쪽에서 새어 나오던 불빛이 사라지자, 길은 달빛과 눈빛만으로 이루어졌다. 희고 차가운 빛이었다. 발밑의 흙길이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눈을 가늘게 떠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유 씨가 앞에서 방향을 잡았다. 주저함이 없었다. 이 길을 전에도 걸어본 사람의 발걸음이었다.

서이강은 묵연주의 한 걸음 뒤에서 걸었다.

“청조 기록소까지 얼마나 걸리오?”

“이틀.” 유 씨가 짧게 대답했다. “길을 피하면 사흘.”

“피해야 하오?”

“오늘 밤은 모르겠습니다.” 유 씨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새벽이 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한 시진쯤 걸었을 때, 유 씨가 발을 멈췄다.

관도에서 벗어난 좁은 갈림길 앞이었다. 왼쪽은 낮은 구릉을 넘는 길, 오른쪽은 하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 둘 다 어두웠고, 둘 다 인적이 없었다.

유 씨가 허리춤에서 작은 나침반을 꺼냈다. 달빛 아래 잠시 들여다보고는 왼쪽 길로 발을 옮겼다.

“이쪽입니다.”

“왜 하천 쪽을 안 가오?” 서이강이 물었다.

“하천 길은 내일 아침이 더 편합니다. 지금은 얼음이 얇아서, 물소리에 발소리가 묻히는 대신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서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다.

묵연주가 왼쪽 길로 들어서며 말했다.

“유 씨는 이 근방을 자주 다녔군요.”

“청조 기록소가 변경 외곽에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유 씨가 걸으며 말했다. “기록은 가운데 있으면 빼앗기기 쉽습니다. 변방이어야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구릉 위에서는 성 안의 불빛이 작게 보였다. 상서루가 어느 쪽인지 묵연주는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아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이강이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왕지훈은 버틸 것이오.”

묵연주가 반응하지 않았다.

“오늘 그 사람 눈빛을 봤소.” 서이강이 말을 이었다. “도망치는 눈이 아니었소. 마지막까지 남아서 무언가를 마무리하려는 눈이었소.”

“그게 꼭 살아남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묵연주가 말했다.

“알고 있소.”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서이강이 말했다. “오늘 하루는 버텼소.”

묵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걸음이 조금 더 안정된 것 같았다.


구릉을 넘어 작은 평지에 닿았을 때, 유 씨가 다시 멈췄다.

“여기서 잠깐 쉽시다.”

폐가는 아니었다. 나무 더미를 쌓아 둔 토막집이었다. 지붕이 낮고 문이 없었지만, 세 면이 막혀 있어 바람을 피할 수는 있었다.

유 씨가 불씨를 살렸다. 작은 불이 피어올랐다.

세 사람은 불 옆에 앉았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아닌 거리. 이미 익숙해진 간격이었다.

묵연주가 품에서 죽간을 꺼냈다.

불빛 아래 죽간을 다시 펼쳤다. 왕지훈에게 받은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읽지 못했다. 지금이 처음으로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이강이 불을 살피며 말했다.

“읽어도 되겠소?”

“읽어야 해요.” 묵연주가 말했다. “그래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


죽간을 읽는 데 한 식경이 걸렸다.

유 씨는 바깥 기척을 살폈고, 서이강은 불을 지켰다. 묵연주의 눈이 글씨 위를 천천히 오르내렸다. 가끔 손가락이 멈추었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마침내 죽간을 내려놓을 때, 그녀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차갑지도, 평평하지도 않았다. 뭔가를 쥐어 잡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왔소?” 서이강이 물었다.

묵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있어요. 왕지훈이 말하지 않은 이름.”

서이강이 불을 올려다봤다가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누구요?”


묵연주가 죽간의 한 줄을 짚었다.

“군량 경로를 설계한 사람이 따로 있어요. 왕지훈은 그 경로를 받아서 집행한 것이고— 설계는 더 위에서 내려온 거예요.”

유 씨가 불 옆으로 가까이 왔다.

“이름이 있습니까.”

“자가 있어요.” 묵연주가 말했다. “이름은 지워져 있고, 자(字)만 남아 있어요. 왕지훈이 지운 건지, 처음부터 그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어요.”

“자가 뭐요?” 서이강이 물었다.

묵연주가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청오(靑烏).”

유 씨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이강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는 이름이오?” 서이강이 유 씨를 보며 물었다.

유 씨가 잠시 말이 없었다.

“자라는 건 사적인 이름입니다. 아무에게나 쓰지 않죠.” 그가 천천히 말했다. “청오라는 자를 쓰는 사람이— 청조 안에 한 명 있었습니다.”

묵연주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있었다고요.”

“칠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유 씨가 말했다. “하지만 사망을 직접 확인한 사람은 없습니다. 청조 내부에서도.”

서이강이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죽었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과, 죽었다고 알려졌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오.”

“그렇습니다.” 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지금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꽃이 작아졌다. 서이강이 마른 가지를 하나 더 얹었다. 파직, 소리를 내며 불이 다시 살아났다.


“청조가 이 기록을 원했던 이유가—” 묵연주가 조용히 말했다. “청오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 씨가 인정했다. “하지만 저는 그 이름을 기록소에서 들은 적이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청오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어요.”

“그러면 청조 전체가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만 알고 있을 수도 있죠.”

묵연주가 죽간을 다시 품에 넣었다.

서이강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청동판을 주웠을 때는 이름도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이름을 가지고 겹겹이 쌓여 있었다. 운령문, 일명회, 왕지훈, 변경 총관, 청조, 그리고 이제 청오.

그는 표사였다. 원래는 짐을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짐이 무엇인지조차 완전히 알 수 없는 자리에 와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유 씨가 먼저 눈을 감았다.

서이강이 경계를 서기로 했다. 묵연주는 불 옆에 앉아 있었다. 잠들지 않았다. 눈을 감지 않고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못 자겠소?”

서이강이 낮게 물었다.

“생각이 많아요.”

“말해도 되오.”

묵연주가 잠시 불꽃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이십 년을 들고 있던 기록이, 이제 내 손에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기뻐야 하는 건지, 무서워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서이강은 대답 대신 잠깐 그녀를 바라보았다.

“둘 다이겠지.” 그가 말했다. “기쁜 것도 맞고, 무서운 것도 맞소. 그 두 가지가 같이 있는 게 이상한 게 아니오.”

묵연주가 그를 보았다.

“표사는 그런 것도 알아요?”

“짐이 무겁고 소중할수록,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더 불안해지는 법이오.” 서이강이 말했다. “그게 잘 운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늙은 표두가 말했소.”

묵연주가 오래간만에 짧게 웃었다.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불빛 아래 그녀의 눈가가 조금 풀렸다.


새벽이 왔다.

유 씨가 눈을 뜨고, 세 사람은 다시 일어섰다. 불씨를 껐다. 재가 남았다.

길을 나서기 전, 묵연주가 서이강에게 물었다.

“청오라는 이름이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일명회와 청조 둘 다 안쪽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오.” 서이강이 말했다.

“무섭지 않아요?”

그는 잠시 생각했다.

“무서운 것도 맞소.” 그가 말했다. “하지만 표사는 길이 위험하다고 짐을 버리지 않소. 위험하면 더 꽉 쥐는 거요.”

묵연주가 발을 내디뎠다. 서이강이 그 옆에 섰다.

두 사람의 보폭이 같아졌다.

유 씨가 앞에서 길을 잡았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차가운 새벽 길 위에서 나란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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