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도하 5화

전통 무협 웹소설 풍설도하 5화 – 검은 깃발, 흰 원 | 일명회의 등장

전통 무협 웹소설 풍설도하 5화 검은 깃발, 흰 원

검은 포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이 아니었다. 마을 어귀 고목 가지에 걸린 길고 좁은 천 조각이었다. 해지고 색이 바랬지만, 흰 원 하나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지워지지 않도록 누군가 의도적으로 새긴 것처럼.

서이강은 그것을 보자마자 발을 멈췄다.

오랜 표사 생활이 가르쳐 준 것이 있었다. 낯선 표식이 달린 길은 들어가기 전에 읽어야 한다. 들어간 뒤에 읽으면 늦는다.

마을은 이상했다.

정오가 지난 시각인데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우물 옆에 두레박이 엎어진 채 얼어 있었다. 개 짖는 소리도, 아이 우는 소리도 없었다. 그저 바람 소리와, 그 바람 위에 올라탄 고요만 있었다.

살아 있는 마을의 고요가 아니었다.

“지나치자.”

묵연주가 먼저 말했다. 서이강보다 반 박자 빨리, 그리고 훨씬 낮게.

“저 표식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아는 게 항상 유리한 건 아니야.”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표식 쪽으로 다가갔다. 포의 끝자락을 들어 뒤집어 보았다. 안쪽 면에 붓으로 쓴 세 글자가 있었다. 빠르게 썼지만 획이 날카로웠다.

一鳴會.

“일명회.”

묵연주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녀는 서이강의 어깨 너머로 글자를 확인하고는 낮게 숨을 내뱉었다.

“알고 있소?”

“알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뭔가 단단하게 굳는 기색이 느껴졌다. “강호 조직이라고 부르면 저쪽에서 좋아하겠지만, 실제로는 정보를 수집해서 권력에 파는 무리야. 흑도도 아니고 정파도 아니야. 스스로는 중립이라고 하지만, 중립이란 건 가장 비싸게 사는 쪽에 붙는다는 뜻이야.”

“강호 비밀을 사고팔면, 운령문 관련 정보도 갖고 있겠군.”

묵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자체로 대답이었다.

서이강은 마을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인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회의 표식이 붙은 마을은 이미 누군가의 구역이 된 것이다.

“운령문이 사라진 것과 일명회가 관련이 있소?”

이번에도 묵연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어. 이십 년 전, 운령문이 갑자기 강호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일명회 사람들이 운령문 주변을 맴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목격자도 있었고.”

“기록을 누가 남겼소?”

“운령문 사람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서이강은 더 묻지 않고 마을을 우회하는 산 사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길은 좁고 경사가 가팔랐다.

눈은 간밤보다 얕았지만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서이강은 그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추적자가 있다면 발소리만으로도 위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걸으면서 묵연주를 곁눈으로 관찰했다.

이상한 여자였다.

약을 다룬다고 했는데, 싸움도 된다.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것 같은데 발걸음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약낭을 어깨에 걸고 걸으면서도 양손은 항상 비어 있었다. 언제라도 꺼낼 수 있게. 그 몸 어딘가에 몇 가지나 더 숨겨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여자는 처음부터 도망칠 준비가 아니라, 싸울 준비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묵 낭자.”

“연주라고 불러. 낭자는 어색해.”

“…연주.” 서이강은 그 이름이 입에서 굴러 나오는 것을 잠깐 어색하게 느꼈다. “당신은 원래 어떤 일을 했소? 약상이오? 아니면—”

“걸으면서 심문하는 거야?”

“대화하는 거요.”

묵연주는 잠시 앞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약을 다루는 일을 했어.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게 맞아.”

“정보도 다루지 않소?”

“…약과 정보는 비슷해. 농도를 알아야 하고, 언제 쓰느냐가 전부야.”

서이강은 그 말을 되씹었다. 약의 독성을 조절하듯 정보의 위험도를 조절한다. 그것이 묵연주가 강호에서 살아온 방식이었다.

“청동판이 나오기 전부터 일명회가 당신을 쫓고 있었다고 했소.”

“응.”

“이유가 뭐요?”

“청하령에 가면 말해줄게.”

“그 말이 벌써 두 번째요.”

“알아.”

“세 번째가 되면 나는 믿지 않을 거요.”

묵연주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속도가 아주 조금 느려졌다. 그것을 서이강은 놓치지 않았다.

“…청하령에 가면, 말해줄게. 진짜로.”

그 목소리에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실려 있었다. 약속이라기보다 결심에 가까운 것이.

서이강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붙었다. 산길이 좁아진 탓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우회로에서 기습이 오면 측면이 가장 위험했다. 그쪽을 본인이 맡는 편이 나았다.

묵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에서 아주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것은 그 자신만 알았다.


산길을 절반쯤 올랐을 때였다.

서이강이 먼저 느꼈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바람의 방향이었다. 위쪽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불었다. 바람을 막는 무언가가 능선 위에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능선 위에 그림자 셋이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서 있었다. 이쪽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정확히 두 사람의 위치를 향해.

묵연주도 동시에 보았다. 서이강은 그것을 그녀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바뀌는 것으로 알았다.

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들킨 것을 알린다. 들킨 것을 모른 척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었다.

서이강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셋이오.”

“봤어.”

“보법 봐요. 발이 눈에 안 잠기고 있소.”

묵연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공 쓰는 사람들이야. 일명회 추적대.”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마을에서 우리를 봤을 거야. 표식을 확인하러 다가갔잖아.”

서이강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게 함정이었다. 마을은 미끼였다. 표식을 확인하러 오는 자를 기다리는 미끼.

“얼마나 강하오?”

“하급 추적대면 둘이 감당할 수 있어. 중급 이상이면 도망쳐야 해.”

“어느 쪽인지 어떻게 알아요?”

“싸워봐야 알지.”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이강은 실소 대신 도를 고쳐 잡았다.

위에서 셋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연주가 낮게 말했다.

“뛰어.”

서이강이 말했다.

“아니오. 받자.”

묵연주가 순간 그를 옆으로 바라보았다. 놀란 것이 아니라, 다시 재는 눈빛으로.

서이강은 이미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도망치는 두 사람보다, 기다리는 두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추적자들이 알기까지는 반 박자가 걸린다. 그 반 박자가 전부였다.

묵연주는 비녀 하나를 뽑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이강의 판단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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