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도하 2

정통 무협 웹소설 풍설도하 2화 비녀 끝의 거래

풍설도하 2화 비녀 끝의 거래

목울대에 닿은 비녀 끝은 차갑고 가늘었다.

서이강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삼키는 동작만으로도 날이 더 깊숙이 파고들 것 같았다. 눈앞의 여자는 방금 복면인 둘을 쓰러뜨렸지만, 그렇다고 아군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본 것은 열린 수레 바닥과 그의 품으로 들어간 청동판이었다. 오늘 밤 역참에 모인 모든 칼날이 노리는 것. 그것을 가진 순간부터 그는 이미 먹잇감이었다.

“대답.”

여자가 낮게 재촉했다.

서이강은 이를 악물었다. “누구지?”

“질문할 처지가 아닌데.”

“당신도 저걸 노리는 자들 중 하나인가?”

여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도 분노도 아닌, 애매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비녀를 더 밀어붙이지도, 거두지도 않은 채 수레 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깥에서는 불길이 거세지고 있었다.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곽노칠이었다.

“살고 싶다면 지금 움직여.”

여자가 말했다.

“표두를 두고?”

이번에는 여자가 분명히 그를 보았다. 눈매는 날카로웠고, 그 속에는 짧은 짜증이 번졌다.

“죽은 사람 붙잡고 같이 죽는 취미라도 있어?”

“아직 안 죽었어.”

“곧 죽을 거야.”

말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이강도 알고 있었다. 곽노칠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남은 표사들도 쓰러져 가고 있었다. 이 역참은 함정이었고, 그 함정은 이미 닫혔다.

하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여자가 짧게 숨을 뱉더니 비녀를 거두었다. 그 순간 서이강은 반사적으로 도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여자는 예상보다 더 빨랐다. 그녀의 손등이 그의 손목을 쳤고, 도는 삐걱거리며 옆으로 튕겨 나갔다.

“멍청하군.”

그녀는 비녀칼을 그의 턱 밑으로 다시 가져가며 말했다.

“지금 네가 죽으면 그 물건은 저놈들 손에 들어간다. 그 표두가 죽기 전까지 지키려 한 것도 결국 그걸 살려 보내기 위해서였을 텐데, 네가 여기서 객기 부리면 다 끝이야.”

그 말은 비수처럼 찔렀다. 곽노칠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랐다. 상자를 버려도 좋다. 하지만 맨 끝 수레 바닥은 절대 열리지 않게 해라. 그 말에는 단순한 명령 이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넘겨야 할 마지막 뜻. 아니면 살려야 할 비밀.

서이강의 숨이 흔들렸다.

바로 그때, 수레 반대편에서 검이 판자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복면인 하나가 뒤로 돌아온 것이다. 여자는 비녀를 거두는 동시에 몸을 틀었다. 그녀의 소매에서 가느다란 은침 셋이 연달아 튀었다. 하나는 복면인의 손목, 하나는 목, 하나는 뺨에 박혔다. 사내가 비틀거리며 칼을 놓쳤다.

“결정해.” 여자가 쏘아붙였다. “같이 가든가, 여기 남아 죽든가.”

서이강은 도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수레 틈으로 몸을 숙여 작은 천 자루 하나를 꺼냈다. 언제 숨겨 두었는지 모를 물건이었다. 그녀는 자루를 열어 바닥에 던졌다. 푸른빛 가루가 흩날리더니 곧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 감아.”

서이강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자, 여자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생각보다 손이 따뜻했다. 차갑게만 보였던 얼굴과 달리 손끝에는 미묘한 열기가 있었다.

둘은 연막 속을 뚫고 역참 뒤편 무너진 담으로 달렸다.

복면인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도망친다!” “뒤를 막아!” “청동판을 빼앗아라!”

청동판. 그 말이 분명히 들렸다. 서이강은 더 이상 이 물건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여자는 담장 틈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처럼 정확히 좁은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는 뒤따르다가 어깨를 벽에 세게 부딪쳤다. 얼음이 쏟아졌다.

담 너머는 눈 덮인 뒤뜰이었다. 마구간 하나가 반쯤 무너져 있었고, 말 한 필이 공포에 질려 고삐를 끊으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타.”

여자가 짧게 말했다.

“둘이?”

“말이 마음에 안 들면 걸어서 죽어도 좋아.”

서이강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말고삐를 잡아채며 안장을 바로잡았다. 여자가 먼저 가볍게 올라탔고, 서이강도 뒤따라 몸을 실었다. 말은 낯선 체중에 거칠게 몸을 떨었다.

그 순간, 담장 위로 복면인 둘이 뛰어올랐다.

“엎드려!”

여자가 소리침과 동시에 몸을 뒤로 젖혔다. 쇠뇌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녀의 머리 위를 스쳤다. 서이강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몸을 숙였다. 여자의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놀랄 틈도 없이 여자가 말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말이 울부짖으며 눈밭을 박찼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뒤에서는 추격 소리가 들렸다. 복면인들도 준비된 듯 다른 말들을 끌고 나오는 소리가 났다.

“어디로 가는 거지?”

서이강이 소리쳤다.

“북쪽 숲.”

“왜 남쪽 길이 아니라?”

“남쪽은 그들이 기다리는 길이니까.”

말은 미친 듯 달렸다. 나뭇가지가 얼굴과 어깨를 후려쳤다. 눈길은 울퉁불퉁했고, 말굽은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서이강은 겨우 버티며 품 안의 청동판이 빠지지 않았는지 다시 눌러 확인했다.

앞에 탄 여자가 낮게 욕했다.

“젠장.”

“왜?”

“피가 난다.”

서이강은 그제야 그녀의 오른쪽 어깨가 젖어 있는 걸 보았다. 연막 속을 빠져나올 때 화살이나 칼끝이 스친 모양이었다. 검은 옷이라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 위로 떨어지는 붉은 얼룩은 선명했다.

“상처가 깊나?”

“신경 끄고 뒤나 봐.”

뒤를 돌아보니 검은 그림자 셋이 따라오고 있었다. 말 탄 자 둘, 나무 사이를 뛰어오는 자 하나. 거리가 줄고 있었다.

서이강은 이를 악물었다. “왼쪽으로 꺾어. 저쪽에 바위 경사가 있어.”

“네가 길을 아나?”

“표행 몇 번 다니면서 봤어.”

여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말머리가 왼쪽으로 꺾였다. 눈 덮인 경사 아래에는 얼어붙은 계류가 있었다. 평평해 보여도 중앙은 약했다. 잘못 올라가면 말 다리가 꺾일 수 있다. 하지만 뒤따르는 자들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오히려 그래서 함정이 될 수 있었다.

“계류 한가운데로 가지 마.” 서이강이 말했다. “오른쪽 가장자리로 붙어.”

“말 안 듣기 좋은 목소리군.”

“그래도 맞아.”

짧은 대꾸 끝에 둘은 계류 가장자리로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말발굽 아래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뒤쫓던 자 하나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말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추격자가 눈더미에 처박혔다.

여자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은 차가운 밤 속에서 이상하게 또렷했다.

“생각보다 쓸 만하네, 표사.”

“이름이 있다.”

“말해.”

“서이강.”

“기억해 두지.”

“당신은?”

여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무 사이 어둠이 짙어질 즈음, 짧게 말했다.

“묵연주.”

이름은 낮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첫인상은 먹구름이나 겨울 강물 쪽에 가까웠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나중에 왔다. 먼저 든 감정은 조심해야 한다는 직감이었다.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 앞쪽 숲이 조금 열리며 좁은 내리막이 나타났다. 말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서이강은 반사적으로 묵연주의 허리를 더 세게 붙잡았다.

“놔.”

“떨어져 죽으라고?”

“그만 꽉 잡으라고!”

말은 간신히 균형을 되찾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오른편 나무 뒤에서 쇠뇌 화살이 튀어나왔다. 묵연주가 몸을 틀어 피했으나, 화살 끝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깊었다. 그녀가 낮게 신음했다.

“젠장.”

말의 속도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묵연주의 몸도 앞으로 기울었다. 서이강은 한 손으로 고삐를 낚아채고 다른 손으로 그녀를 붙들었다.

“내려.”

“미쳤나? 지금?”

“당신 상태로는 오래 못 버텨. 말도 곧 잡힌다.”

그는 앞을 보며 외쳤다. “저기, 바위 틈!”

숲 끝자락에 검은 암반이 벌어진 좁은 틈이 보였다. 말은 들어가지 못하지만 사람 둘은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법했다. 서이강은 거칠게 고삐를 당겼다. 말이 울부짖으며 속도를 줄였고, 둘은 거의 굴러 떨어지듯 땅에 내렸다.

묵연주의 발이 흔들렸다. 서이강은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부축했다.

“스스로 걷지 못하면 업혀.”

“네가 감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추격자 소리가 가까워졌다. 묵연주는 이를 악물더니 더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서이강은 그녀를 등에 업었다. 놀랄 만큼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오히려 불길했다. 사람이 이렇게 가벼우면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위 틈 안은 어둡고 축축했다. 몸을 숙여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두 사람의 숨소리와 발소리만 메아리쳤다. 바깥에서는 추격자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안으로 들어간다!”

“등불 가져와!”

묵연주가 그의 어깨 위에서 힘겹게 말했다. “오른쪽 주머니.”

“뭐?”

“내 허리띠 안쪽. 작은 병.”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이강은 곧바로 손을 넣었다. 차가운 유리병 하나가 잡혔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손등에 여자의 체온이 스쳤다. 너무 가까웠다. 묵연주의 숨이 그의 목덜미 근처에 닿았다. 등 뒤의 몸은 열로 뜨거웠고, 그 열이 상처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헷갈릴 만큼 정신이 어지러웠다.

“빨리.”

서이강은 병을 건넸다. 묵연주는 이를 뽑아 바위 바닥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곧 톡 쏘는 냄새가 퍼졌다.

“이게 뭔데?”

“불 붙으면 독연.”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래서 빨리 나가야지.”

두 사람은 틈 끝으로 몸을 밀어냈다. 출구는 절벽 아래 좁은 경사였다. 눈과 얼음이 엉겨 있어 발 디디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바로 그때 뒤쪽에서 등불 불빛이 번쩍였다.

묵연주가 숨을 들이켰다. “뛰어.”

서이강이 그녀를 다시 업고 경사를 내려간 순간, 뒤편에서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독연이 폭발적으로 번졌다. 회록색 연무가 바위 틈을 가득 메웠다. 추격자들의 비명이 터졌다.

“눈이—!”

“숨 막혀!”

묵연주가 낮게 웃었다. “잠깐은 못 쫓아올 거야.”

서이강은 웃을 여유가 없었다. 경사 아래는 숲이 끝나는 지점이었고, 그 너머로 희미한 달빛 아래 강줄기가 보였다. 얼어붙지 않은 검은 물. 그리고 바람. 밤은 더 깊어지고 있었고, 그들의 도망길도 아직 멀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제 어디로?”

묵연주는 그의 등 위에서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긴 하나?”

“없지.” 그녀가 아주 작게 대꾸했다. “그래도 찾는 수밖에.”

서이강은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했다. 완벽한 계획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 역시 쫓기며 살아남으려는 사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러나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갑자기 무겁게 기울었다.

“묵연주?”

대답이 없었다.

그는 급히 그녀를 내려보았다. 입술이 창백했다. 어깨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눈빛도 초점이 흐려졌다.

“정신 차려.”

“시끄러워….”

“지금 쓰러지면 둘 다 죽어.”

묵연주는 겨우 눈을 떴다. 그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 처음으로 그녀가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보였다. 늘 차갑고 냉정해 보이던 얼굴 아래에도 분명한 인간의 공포가 있었다.

서이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가 쪽으로 내려가는 좁은 오솔길, 바위 그늘, 그리고 강변 버드나무 숲. 그 너머에 오래전에 버려진 나루터 창고가 어렴풋이 보였다.

“저기서 밤을 넘긴다.”

“추적자가—”

“당신은 이제 말할 힘도 없어. 조용히 해.”

묵연주는 피식 웃으려다 실패했다. 서이강은 그녀를 다시 업고 강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목 상처가 욱신거렸고, 등에는 사람 하나의 무게와 열이 얹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싫지 않았다. 버겁기는 했지만,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강가에 닿았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품을 눌러 청동판을 확인했다. 얇은 금속의 감촉이 분명했다.

오늘 밤 그는 세 가지를 얻었다.

정체 모를 보물. 죽음에 가까운 추격. 그리고 아직 믿을 수는 없지만, 혼자 둘 수 없는 여자 하나.

강물은 검게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늑대 비슷한 짐승 울음이 들렸다.

서이강은 이를 악물고 어둠 속 창고를 향해 걸었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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