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도하 14화

풍설도하 14화 – 기록을 건네는 손 | 정통 무협 웹소설 연재

풍설도하 14화 — 「기록을 건네는 손」


왕지훈의 손이 나무 상자 위에 머물렀다.

열지는 않았다. 다만 손가락 끝으로 표면을 한 번 쓸었다. 오래된 나무 결, 닳은 자국. 이 상자를 얼마나 오래 옆에 두고 살았는지를, 그 자국이 대신 말하고 있었다.

서이강은 방 안을 한 번 훑었다. 창은 두 개, 문은 하나. 유 씨는 문 옆에 서 있었고, 묵연주는 왕지훈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은 방금 들어온 자리, 문에서 두 걸음.

밖에서는 쇳소리가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오.” 서이강이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기록을 건넬 것인지, 버릴 것인지 정하셔야 하오.”

왕지훈이 그를 보았다.

“서두르는 건 아닌가.”

“표사는 짐을 옮기는 사람이오. 짐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판단을 미루면, 짐이 아니라 짐 지는 사람이 먼저 사라지는 법이오.”

왕지훈이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

“좋은 말이다.”


****

상자가 열렸다.

목간 묶음과 죽간 두 편이 들어 있었다. 목간은 손바닥 두 개 크기로, 십여 장이 가죽 끈으로 묶여 있었다. 죽간은 그보다 오래된 것이었다. 앞면에 가느다란 글씨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묵연주가 먼저 손을 뻗었다.

“이게…”

“이십 년 전 기록의 원본이다.” 왕지훈이 말했다. “보고서에 쓰인 것과, 실제로 일어난 것.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놓은 것이지.”

“왜 버리지 않으셨어요.” 묵연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이것만 없애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었는데.”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내 몸 안에 있다.” 왕지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기록을 태운다고, 내가 한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 하나가 죽으면 이것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아서 남겨두었다.”

그는 죽간을 묵연주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네가 가져라.”


****

죽간의 무게는 가벼웠다.

하지만 묵연주의 손이 그것을 받은 순간, 몸이 조금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서이강은 그것을 보았다. 말하지 않았다. 그 무게를 말로 가볍게 만드는 것은, 이 자리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유 씨가 나무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목간은요.”

“그건 내가 처리하겠다.” 왕지훈이 목간 묶음을 다시 상자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 안에는 사람 이름이 더 있다. 죽은 사람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도.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조에게도 줄 수 없습니까.”

유 씨의 질문에, 왕지훈이 잠시 그를 보았다.

“청조는 기록을 보관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 기록이 무기가 되기도 하지.” 그가 말했다. “이 목간은 아직 때가 아니다.”

유 씨는 더 주장하지 않았다.


****

바깥 쇳소리가 계단 아래까지 닿았다.

서이강이 창문 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성 안쪽에서 올라오는 병력은 정규군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성벽 쪽에서 움직이는 기척은 달랐다. 더 조용하고, 더 빠르고, 흩어지지 않았다.

“일명회가 두 방향에서 오고 있소.” 서이강이 말했다. “병력이 먼저 상서루에 들이닥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선택지가 없어지오.”

“왕지훈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거요?” 유 씨가 물었다.

“모르겠소. 하지만 이 자리에서 포위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소.”

왕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상외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몸이 오래된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등이 곧게 펴졌다.

“나는 이 누각에서 나가지 않는다.”


****

세 사람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총관—” 유 씨가 입을 열었다.

“내 결정이다.” 왕지훈이 손을 들었다. “이십 년 전에 나는 이 자리를 피했다. 그 결과가 오늘 여기 와 있다. 다시 피하면, 같은 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그는 상자를 닫으며 말했다.

“병력이 올라오면 내가 맞는다. 그 사이에 너희는 빠져나가라.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병력이 상서루를 완전히 봉쇄하기는 어렵다. 총관이었던 사람을 공개적으로 제압하는 것은, 관부도 쉽지 않을 테니.”

서이강이 그를 똑바로 보았다.

“버티는 거요, 아니면 죽으러 있겠다는 거요.”

왕지훈이 눈을 마주쳤다.

“버틴다. 다만, 오래는 아니다.”


****

묵연주가 죽간을 품 안에 깊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왕지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인사였다. 강호식도 관부식도 아닌, 그냥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스승님이 살아 계셨다면—”

“뭐라고 했을지 나도 모른다.” 왕지훈이 말을 잘랐다. 하지만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부드러웠다. “아마 잘했다고는 안 했겠지. 하지만 틀렸다고도 안 했을 것이다.”

묵연주는 눈을 들었다.

“살아 계십시오.”

“그러지.” 왕지훈이 짧게 대답했다. “오늘은.”


****

세 사람은 상서루 안쪽 벽을 따라 이동했다.

유 씨가 앞에서 길을 잡았다. 상서루 뒤편으로 작은 창고가 하나 붙어 있었다. 안에는 곡물 포대와 낡은 무기 상자가 쌓여 있었다. 구석에, 바닥보다 조금 낮은 틈이 있었다. 오래전에 짐을 옮기던 작은 하역구였다.

“여기요.” 유 씨가 말했다.

좁았다. 한 사람씩 몸을 비틀어야 내려갈 수 있는 크기였다.

묵연주가 먼저 들어갔다. 그다음 유 씨. 서이강이 마지막으로 발을 집어넣으며 창고 문을 끌어당겼다.

어둠이 내려왔다.

그 어둠 속에서, 계단 위로 병사들이 올라가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상서루 쪽이었다.


****

하역구는 성벽 아래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무릎을 구부리고 기어가는 통로를 지나자, 바람 냄새가 났다. 흙 냄새, 말 냄새, 그리고 저녁 밥 짓는 연기 냄새. 골목은 민가와 군영 사이에 끼어 있는 잊힌 길이었다.

세 사람이 차례로 나왔다. 묵연주가 제일 먼저 허리를 폈다. 서이강이 마지막으로 나오며 뒤를 한 번 확인했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아직은.

“왕지훈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서이강이 유 씨에게 물었다.

“오늘 밤은 버틸 것입니다.” 유 씨가 말했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내일은 내일 생각하면 되오.” 서이강이 말을 끊었다.

유 씨가 그를 보며 살짝 눈을 좁혔다.

“표사다운 말이군요.”


****

골목 끝, 좁은 처마 아래에서 세 사람은 잠시 멈췄다.

성 안은 여전히 바빴다. 군홧발 소리, 명령 소리, 말이 히힝거리는 소리. 상서루 방향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기척이 실려왔다. 왕지훈이 병력과 맞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묵연주가 죽간을 품에서 꺼내 한 번 더 확인했다. 가죽 끈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글자가 지워지지 않았는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서이강은 그것을 보며 말했다.

“목적지가 어디오?”

묵연주가 그를 보았다.

“청조의 기록소. 유 씨가 알고 있어요.”

“청조는 안전한 곳이오?”

“안전한 곳은 없어요.”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만 이 기록을 가장 오래 지킬 수 있는 곳이죠.”

서이강은 잠시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됐소. 오래 지켜지면 됐지, 안전할 필요는 없으니까.”

묵연주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말하려다 멈추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서이강이 먼저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

“앞서겠소.”


****

세 사람이 골목을 벗어난 것은, 성 안 북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문지기가 막 장대를 내리려는 순간, 유 씨가 패를 내밀었다. 문지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장대가 다시 올라갔고, 세 사람은 성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밤바람이 얼굴을 쳤다.

성벽을 등지자, 위에서 내려다보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군마 소리, 쇳소리, 상서루의 등불. 앞으로는 어두운 길과 바람 소리뿐이었다.

묵연주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성벽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잠시,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처럼 서 있었다.

서이강이 반 보 뒤에서 말했다.

“죽간.”

“네.”

“잘 들어 있소?”

묵연주가 품을 한 번 짚었다.

“들어 있어요.”

“그럼 됐소.”

두 사람은 다시 걸었다. 유 씨가 앞에서 방향을 잡았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어두운 길 위에서 고르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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