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도하 11화 – 바람을 가르는 길 | 정통 무협 웹소설 연재
풍설도하 11화 — 「바람을 가르는 길」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겨울 끝자락의 관도는 군마가 다니는 소리 대신, 바람 부는 소리만 품고 있었다. 하얗게 얼어붙은 흙길 위로 마차 바퀴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지만, 최근 것은 아니었다.
세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앞에는 서이강, 뒤쪽 한 발자국 옆에 묵연주, 그 옆으로 약간 떨어져 유 씨가 걸었다. 서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겹쳤다가 떨어졌다.
“이 길로 가면 바로 변경이오?”
서이강이 물었다.
“바로는 아닙니다.” 유 씨가 말했다. “한 번 비켜갔다가 돌아가야죠. 곧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올 겁니다.”
“왜 비켜가요?”
“그쪽에 누가 지켜보고 있어서요.”
****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 길은 관부 깃발이 꽂힌 작은 검문소로 이어져 있었다. 나무로 엮은 장벽과 허름한 초소, 깃발은 바람에 반쯤 찢어져 펄럭이고 있었다. 오른쪽은 산자락을 따라 돌아가는 좁은 길이었다. 발자국이 적었다.
유 씨가 아무 말 없이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왼쪽은 관부고, 관부에는 일명회가 있소?”
서이강의 질문에 유 씨가 짧게 웃었다.
“관부 안에 일명회가 있는 건지, 일명회 안에 관부가 있는 건지— 그건 보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묵연주가 조용히 말했다.
“적어도 변경 쪽에서는 둘이 따로 움직이지 않아요. 왕지훈이 그걸 허락했으니까.”
서이강은 잠깐 말을 잃었다.
왕지훈. 변경 총관이자, 이십 년 전 군량 실종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름.
그 이름은 아직 멀리 있었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
산자락 길은 관도보다 험했지만, 대신 눈에 띄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로 관도가 내려다보였다. 가끔 말 탄 병사들이 지나갔고, 드물게 상단 호송대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두가 작았다. 움직이는 점처럼.
“청조의 교란 작전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뭐요?”
서이강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유 씨가 말했지만, 표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정보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거죠. 일명회가 쥐고 있는 줄을 끊는 대신, 그 줄에 다른 것을 매다는 겁니다.”
“우리를 미끼로 쓰겠다는 거네요.”
“미끼는 이미 되셨습니다.” 유 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청하령에서 빠져나온 순간부터요.”
서이강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미끼라는 말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자기 혼자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옆에서 한 사람의 발소리가 함께 들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해질 무렵, 작은 역촌에 닿았다.
관도에서 한참 비켜난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허름한 주점 겸 객점 하나가 있었다. 간판에는 글자가 반쯤 벗겨져 있었고, 문 앞에는 말 매는 나무 기둥이 두 개 서 있었다. 말은 한 필도 없었다.
“여기서 오늘 밤 묵읍시다.” 유 씨가 말했다. “그리고 일이 제대로 흘러가게 만들어야죠.”
“무슨 일인데요?”
“일명회가 귀를 열게 만드는 일입니다.”
****
주점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장작 타는 냄새와 묵은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주인 노인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손가락 두 개를 접어 보이니, 방 하나와 저녁상을 알아서 챙겨주었다.
저녁은 간단했다. 보리밥과 장국, 말린 채소 무침, 그리고 이름 모를 산짐승 고기를 넣은 찌개 한 그릇. 세 사람은 둥근 상에 둘러앉았다.
“오늘 밤에는 일부러 떠들 겁니다.” 유 씨가 말했다. “벽에도 귀가 있으니까요.”
“누가 듣고 있다고요?”
“일명회요. 변경 전선에서 움직이는 모든 정보는 여기저기 작은 귀를 통해 모입니다. 역촌, 주막, 객점, 포주, 점소이— 다들 조금씩 보고를 올리죠.”
서이강이 주변을 둘러봤다. 주인 노인은 부엌 쪽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취해 쓰러진 나그네 둘이 마루 끝에 널브러져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
그러나 특별한 것은 언제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
밤이 깊자, 주점 안에는 세 사람과 주인 노인만 남았다.
취객 둘은 이미 다른 방으로 옮겨진 뒤였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틈은 많았다. 벽과 기둥 사이, 마루 밑, 처마 끝. 소리가 새어나갈 구멍은 많았다.
유 씨가 일부러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청동판이 한 개 더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서이강은 잠시 멈칫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술잔을 내려놓았다.
“벽에 있던 내용은 낭자가 다 외웠소.” 그는 묵연주를 스쳐 보았다. “그리고 청동판은— 우리가 가진 것 말고도, 누가 어디에 숨겨놨을 수도 있지.”
“왕지훈이요?” 유 씨가 말을 이었다. “혹은 왕지훈의 윗사람이.”
묵연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어요. 기록은 한 번만 남기면 안 된다고.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하나가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스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남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일명회가 가진 건 반쪽뿐이라는 말이네요.” 유 씨가 말했다. “나머지 반쪽은 아직 누군가 품 안에 넣고 있고.”
서이강은 일부러 한 번 더 술잔을 부딪쳤다.
쨍— 유난히 크게 울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벽과 기둥을 타고 어디론가 스며들어갔다.
****
방으로 돌아온 뒤, 서이강은 창 틈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주점 마당 한쪽에, 사람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마루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듯한, 애매한 거리. 술집에 온 손님이라기에는 조용했고, 지나가는 나그네라기에는 오래 머물고 있었다.
“봤소?”
뒤에서 묵연주가 물었다.
“봤소.” 서이강이 대답했다. “귀가 있는 곳엔 눈도 있는 법이오.”
“불안해요?”
“조금.”
그는 솔직히 말했다.
“이길을 고른 건 우리였소. 그러니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어도 어쩔 수 없소. 다만—”
“다만?”
“쫓기는 건 익숙한데, 일부러 쫓기는 건 아직 익숙하지가 않소.”
묵연주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웃음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했다.
“이강.”
그가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우리도 쫓아요.”
그녀의 눈빛은 조용했지만, 깊었다. 쫓기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는 되쫓을 것을 말하는 눈빛.
서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
이튿날 아침, 역촌을 떠났을 때 뒤를 따르는 발자국이 늘어나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 위에 남는 자국의 모양과 깊이, 숨이 섞여 오는 리듬. 서이강은 일부러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가, 때로는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뒤쪽 발자국이 그것을 따라왔다.
“물었다.” 유 씨가 낮게 말했다. “일명회가 미끼를 문 겁니다.”
“어떻게 확신해요?”
“저 사람들은 정보를 쥐고 사는 자들입니다. ‘왕지훈이 숨긴 다른 기록’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아주 좋은 장사지요. 놓칠 리가 없습니다.”
관도 아래 작은 장터를 지나갈 때, 떠도는 소문이 하나 들려왔다.
“청하령에서 군량 기록이 나왔다더라.”
“아니야, 청하령이 아니라 남쪽 사찰이래.”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쨌든 누가 왕지훈 목을 쥐고 흔들자는 거지.”
장터 사람들은 소문을 즐기고 있었다. 누가 처음 흘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소문이 이미 발을 달고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 씨가 옆에서 말했다.
“보셨죠? 이제 우리만 아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그날 해질녘, 관도에서 조금 벗어난 구릉 위.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사람 서 있었다. 얼굴 절반을 두건으로 가린 채, 아래쪽 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세 사람의 등이 작게 보였다.
남자의 옆에 또 다른 이가 다가왔다. 마른 체구, 가벼운 발걸음. 둘 다 일명회 표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 안쪽에 작은 나무 패가 숨겨져 있었다. 일명회의 눈과 귀에게만 허락되는 표식.
“청하령에서 놓친 놈들이 맞나?”
“맞습니다.” 마른 자가 대답했다. “청조 쪽 새끼까지 붙었더군요.”
“청조라… 귀찮아졌군.”
두건을 한 남자가 낮게 웃었다.
“왕지훈이 얼마나 값을 치를지, 이제 슬슬 계산을 해봐야겠지.”
그가 손을 들어 길 아래를 가리켰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저 셋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먼저 보자. 청조가 판 장기판에 그냥 올라갈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었다.
언덕 위의 그림자 둘은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아래 길 위의 세 그림자는 여전히 앞으로만 걷고 있었다.





